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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학토론
공부의 단계
관리자
2023.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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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단계
첫째는 나와 세상에 대한 의심이 있어야 한다. 내가 나와 세상을 다 잘 알고 있다고 하면 내가 알고 있는 대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데, 대부분 다 그렇듯이 자신이 자신을 잘 알기 어렵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관대하게 마련이다. 그래야 이 험난한 세파를 이겨낼 수 있다.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스스로 격려하지 않고는 고통스러운 이 세상을 견뎌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일반론이다.
일반론만으로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특히 학문을 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내가 모른다고 해야 알고 싶어지지 다 아는데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어렵다. 알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잘 살아가려면 나와 세상을 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다 안다고 하니 무엇이든 이야기 하면 네 하고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요 하면서 그 정도야 나도 안다는 식으로 응답하는 분들이 많다.
그것은 삼척동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아는 당나라 백낙천의 고사처럼, 제악막작 중선봉행은 세 살 먹은 아디도 알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여든 먹은 노인도 어렵다는 것 말이다. 그렇듯이 실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학문을 하려면 세부 전공을 선택하게 되는데 선택 이전에 자신이 관심이 있는 부분과 그 부분에 어떤 논문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대개 하고 싶은 분야는 남들도 하고 싶은 분야라 내가 쓸 수 있는, 논의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선행연구 검토이다. 선행연구를 뛰어넘지 못하면 논문은 사실 쓸 필요가 없다. 시간 낭비이고 경제 낭비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해야 할 분야로 나아가야 한다. 필요한 분야이지만 아직 연구자가 많지 못한 분야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현대 학문은 대단히 미시적으로 분화되었다. 그 많은 분야의 선행연구를 어떻게 다 검토하겠는가. 그러므로 필요한 분야, 그 분야 가운데 자신이 공부해서 논문을 쓸 분야를 선배나 지도교수를 통해 상담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이 하는 것은 맨 땅에 헤딩하는 격이다. 원래 전공은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이 연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만 만학을 하는 분들은 학부 전공과 연결되었다고 해도 선행 학습이 의미 있게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불교의례나 상담 음식문화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전공 학부도 마땅찮고 어쩌면 오로지 현장 경험이 학부전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의례 같은 경우는 더욱 그렇다. 동국대나 승가대 불교대학을 졸업했다고 해도 의례 관련 학습은 실수 한 과목에 불과하다.
그 실수과목도 간단한 사찰에서 수행자로 살아가는 의례를 집전하는 형식과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지 이론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한국불교처럼 다양한 의례와 의문이 있는 것을 훑어볼 시간도 교육도 없다.
그래서 학부에서는 자료의 조사와 숙지를 하고 석사과정에서는 그것을 분석하고 박사과정에서는 그것에 대한 논리를 탐구하여 이론화하여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이다. 박사 논문은 해당 분야에서 자신의 것밖에 없는 것이 맞다. 해당 분야의 제1호 논문이어야 한다.
자신이 논문 쓰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이해보다 유사 역사논문을 많이 읽다 보니 교학이나 사상과 의례 논문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사상과 역사는 결코 같지 않다. 의례의 목적이나 역사 등을 다룬다고 해서 의례 논문은 아니다.
의례 논문은 의례의 구조와 근원적 의미 및 사상 그것을 수용하는 이들의 인식과 의례적 효과 등을 다양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의례 역사 논문을 쓰는 이들을 보면 의례문의 목차 비교 정도에 그치고 왜 그 목차가 그렇게 다른지를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역사 논문일 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자신이 전공하는 원 자료를 탐독하고 역해 역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는 해당 분야의 논문을 읽어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하는데 의례 관련 논문은 대개는 역사 논문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논문 분야의 1차 자료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는 2차 해석자료, 3차 논문자료를 읽어서 자신의 논지가 신선도를 갖도록 해야 한다. 이 모든 공부에 기본은 호흡이라는 수행이 수반돼야 한다.
책을 보고 컴퓨터를 치고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굽어지게 된다. 중간 중간 호흡을 하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펴진다. 허리가 펴지지 않으면 정신이 바로 서기 어렵다. 또 좌고우면해서는 안 되지만 늘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아차려야 한다.
카톡에 문자를 아무리 자세하게 써도 읽지 않고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시행착오를 하고 안 해도 될 일을 반복하게 된다. 경제성은 공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렇지만 반복하지 않으면 숙지가 되지 않으므로 나이가 들수록 읽고 옮겨 쓰며 익혀야 한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이해될 때까지 쓰고 읽어야 한다. 어느 선생님은 금강경을 천 번 번역하였단다. 그 결과 가사체 금강경이라는 확신으로 십여 년 동안 수십만 권의 가사체 금강경을 법보시하고 단체를 이끌고 있다.
대충 보고 한 번 듣고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공부인의 자세가 아니다. 설령 아는 것이라고 해도 관문상을 내지 말고 다시 한 번 숙고해봐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좋다.
실제로 저도 지식의 부족으로 늘 괴롭다. 그래서 책을 놓지 못하고 있다. 불교 수행을 표현하는 세 글자가 무엇인가. 문사수(聞思修)다 듣고(저자의 글을 읽는 것은 자자의 말씀을 듣는 것) 깊이 사유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문사수를 떠나 어떻게 수행이 있는가. 불교의 핵심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는 선도 다른 생각을 멈추고 생각을 하나의 경계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유실습’하는 것이다. 자료를 읽고 이해하고 그것의 의미를 사유하고 익혀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것에 대해 다른 이들은 그동안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파악한 상태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의견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료를 정리하고 정리한 자료를 입력해 놓을 수는 있지만 논문을 조금씩 써놓는다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연구를 집적하여 최종 어느 정도 정리된 다음에 서론 본론 결론을 기술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정법이고 만학의 경우에는 우선 서론과 결론을 써놓고 본론을 정리되는 대로 서술하는 방법도 편법이지 필요하다. 완전히 다 숙지하고는 영원히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왜인가. 알면 알수록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 못하다면 사실 공부한 소득이 없다. 오히려 교만심만 늘어 자신이나 주변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겸손을 익히지 못하면 안 된다.
제가 학부 수업 때는 스무 살 복창하게 하고, 대학원 수업에서는 서른 살을 복창하게 하며 자신의 신분을 잠시 놓고, 신분이라는 옷을 벗고 교실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대학원 공부 때 어느 분이 학부에서 바로 입학원 젊은 석박사생들에게 조카 같다느니 자식 같다느니 하며 반말을 하는 경우를 보았다. 만학으로 입학한 것이 자랑도 아니고 부끄러울 것도 없지만 같이 공부하는 동학은 다 같은 입장이며 동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이 어리다고 무조건 반말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데, 똑 같은 조건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함께 가는 동학들이 있어 공부가 되는 것이다. 또 스터디를 대학원에서 많이 하는데 대학원 스터디는 원전 독해를 위해서가 대부분이다.
논문의 첨삭이나 예비발표 연습은 지도교수나 동학의 선배와 하는 것이고, 예비발표는 지도교수 단위로 하는 것이다. 그것과 별로 상관없는 이들과 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실질적이지 못하다.
원전 읽는 독해가 아닌 스터디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원전도 동일 전공자가 읽거나 관심 있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범본이나 해석본이 없는 희귀 한문본을 볼 때이다. 세부 전공이 다르면 같이 읽어야 하는 것은 개론적인 것일 때 한정된다.
전통 답지 않은 가설에 끌려 다녀서는 대학인의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없다. 한 길을 오롯이 가야 한다. 좌고우면하거나 이곳저곳에 기웃거리는 것은 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 길을 가야 한다. 전공 관련 1차 자료를 읽고 현장을 답사해야 한다.
小年而老學難成이라고 했듯이 시간이 너무 빠르다. 금방 3, 4년이 지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논문 쓸 때 돼서야 메모를 하고 원전을 정리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내가 공부할 분야에 관한 서적을 처음부터 읽고 메모하라고 노래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래도 해야 한다. 어쩌는가. 늦게 공부하는 것이 무기가 아니지 않는가. 젊은 친구들보다 만학도가 유리한 것은 사회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초 공부가 끝났을 때 활용할 때 장점을 발휘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이언을 믿고 지금이라도 해당 분야의 1차 원전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힘이 생긴다. 현재의 경험만으로는, 그것을 공부하는 이들 누구나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므로, 자신의 이론을 특이하게 드러내기가 힘들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공부한 성과를 지도교수에게 메일이나 문자로 보내 같이 점검하자고 해도 허공의 메아리이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하는 공부이니 부탁드리는 대로 좀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가능하면 이모티콘보다 문자로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혔으면 좋겠습니다. 이모티콘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예술로 학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으로 학위를 하는데 학문의 방법이 아직 글쓰기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2.03.23.
빠라미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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