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공지
가피와 귀의
관리자 2024.01.13 37
가피와 귀의

한국불교에서는 ‘나모’와 ‘귀의’의 대해 ‘나모’도 ‘귀의’라고 이해해 두 개념이 같다고 이해해 왔다고 보인다. 나모에도 귀의의 개념이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먼저 두 단어의 사전적 개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모’의 원형은 나마스(namas)이다. 저두(低頭: 고개를 숙이다), 예경, 언어와 태도상의 숭경(崇敬), 경전에는 ‘歸依, 歸命, 禮, 敬禮, 歸禮’로 번역되고 있다. 나모에 귀의의 뜻도 있으며, 그 핵심을 고개를 숙여 절한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귀의’의 원어는 ‘사라낭 가차미(saraṇaṁ gacchāmi)’이다. 사라낭(saraṇaṁ) 보호 방호하는 집이라는 뜻이며, ‘가차미(gacchāmi)’는 내가 간다는 뜻이다. 사라낭(saraṇaṁ)의 원형은 ‘사라나(saraṇa)’로 보호, 방호, 피난의 뜻이고, 비호물(庇護物), 소옥(小屋), 주가(住家)의 뜻으로 경전에는 귀(歸), 의(依), 귀의, 귀처(歸處), 귀취, 소귀(所歸), 귀앙(歸仰), 위호, 구, 보호, 구제, 구제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보면 ‘나모’는 절한다는 의미에서 출발하고, ‘귀의’는 보호처로 돌아가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식의문> 같은 의례 의문에 ‘나모’는 불보살의 가피를 구할 때 쓰이고, ‘귀의’는 문자 그대로 귀의삼보 때 쓰이고 있다. <시식의문>의 표백문에 명확히 구분되고 있다. 가피를 구할 때의 칭명에는 ‘나모불’하고, 귀의삼보할 때는 ‘귀의불’이라고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는 것이다.

나모에 귀의의 뜻이 있다는 것은 사전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모와 귀의가 활용되는 것은 차이가 있다. ‘나모’는 귀의 이전의 근원적인 의례이다. 불교를 믿지 않아도 붓다에게 예경할 수 있고, 그 명칭을 부를 수 있다. 부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나모붓다야” 해도 그 가피를 입는다는 것이다. 가피를 입은 이가 자신의 스승이 붓다라는 확신을 하면 귀의를 서원하는 것이다.

우리 불교계에서는 나모와 귀의를 크게 구분하지 않고 사용해왔다. 그렇지만 의례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구별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2010년 <표준법요집 바로 보기>라는 불교신문 10회의 기획기사의 첫 번째로 “나무, 귀의로 번역해도 되나”를 연재하였다. 나모와 귀의의 공능이 다르므로 구별하자는 취지의 글이었다.

나모와 귀의가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반복이라면 다른 표현과 표기를 하지 않는다. 나모가 예경의 의미라고 하지만 예경이 아닌 가피로 발전하면서 나모불하고 칭명할 때는 절을 하지 않고 절을 하고자 할 때는 ‘예불(禮佛)’이라고 한다. ‘예불’문은 절 행위와 동행할 수 있도록 ‘일심정례불타야중, 지심신례불다야중 지심귀명례 불타야중’ 하며 ‘예’자를 수식하는 의문이 발달하였다.

정리하면, 가피를 구할 때는 나모불(붓다야)
귀의할 때는 귀의불(붓담 사라남 가차미)
절을 할 때는 예불(일심정례 불타야중, 석가모니불)

조사님께 절을 할 때는 예조(禮祖)라고, 임금님께 절을 할 때는 국궁사배하듯이 예불 예조라고 할 때는 절을 한다거나 하라는 지시어이다.

그럼 자성불에 귀의할 때는 어떻게 할까. 간단하다. 자성불은 나 밖의 어떤 피난처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가피를 내리는 주체도 나의 자성불이고 내가 의지할 곳도 자성불이다. 원천적인 의미로 볼 때 귀의를 포함하고 있는 나모가 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모자성미타불 같은 형식이 되는 것이다.

나모는 믿음 이전의 모든 이들이 구원되는 칭명이다. ‘나모붓다야’에는 ‘나모자성불’ 또한 들어 있다. 그 이름이 어떻게 부여되는 것은 사상과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청색이라고 할 수도 없고 백색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또 아닌 것도 아닌 세계와 경지를 표현하는 것이 언어라 설명에는 한계가 있다.

“나모붓다야”의 칭명은 부처님의 가피가 온 세상에 퍼지기를 염원한다.

마하반야바라밀

2019.0812. 09:30.

이후 마하반야바라밀은 “빠라미따”로 통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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