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자료
과거칠불설의 기원
관리자 2024.01.03 38
과거칠불설은 칠대조상 청정설과 그 괘를 같이한다. 종자의 청정설에 의거하여 법의 맥이나 종자가 칠대는 청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과거칠불설을 잉태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칠불설
 
비바시불(毘婆尸佛)·시기불(尸棄佛)·비사부불(毘舍浮佛)·구류손불(拘留孫佛)·구나함불(拘那含佛)·가섭불(迦葉佛)·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가리킨다.
우리 나라에서는 신라불국토설(新羅佛國土說)과 관련하여 과거칠불에 대한 신앙이 전개되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의 서울 서라벌에는 과거칠불의 가람터가 있었다고 한다.
즉, 과거칠불이 머물면서 설법하던 사찰로 흥륜사(興輪寺)·영흥사(永興寺)·황룡사(皇龍寺)·분황사(芬皇寺)·영묘사(靈妙寺)·사천왕사(四天王寺)·담엄사(曇嚴寺) 등이다.
이 설은 16세 때 위나라로 가서 현창화상(玄彰和尙)의 밑에서 공부하고 온 아도(阿道)에게 그 어머니가 이야기한 것으로, 신라인들이 염원하던 불국토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이 과거의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곳임을 상기시켜, 그들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그곳에 새로운 불국토를 재현하도록 하려는 데서 출발한 것이다.
과거칠불 가운데 비바시불은 과거 91겁에 출생하였으며, 왕족으로 파파라수(波波羅樹) 아래에서 성불한 뒤 3회의 설법을 가졌는데, 1회 때는 16만 8000명, 2회 때는 10만 명, 3회 때는 8만 명을 제도하였다고 한다.
시기불은 과거 장엄겁에 출현한 1,000불 가운데 제999불로서 광상성(光相城)의 왕족으로 출생하였으며, 분타리수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3회에 걸쳐 설법하였는데, 1회에는 10만 명, 2회 8만 명, 3회 7만 명을 제도하였다고 한다.
비사부불은 과거 31겁 때 무유성(無喩城)에서 왕족으로 출생하였으며, 바라수(婆羅樹) 아래에서 성불하여 2회의 설법을 가졌는데, 1회에는 7만 명, 2회에는 6만 명을 교화하였다.
구류손불은 안화성(安和城)의 바라문가정에서 태어나 시리수(尸利樹) 아래에서 성불하였으며, 1회의 설법으로 4만의 비구를 교화하였다. 구나함불은 바라문가정에서 출생하여 오잠바라수(烏暫婆羅樹) 아래에서 성도하였으며, 1회의 설법으로 3만의 비구를 제도하였다.
가섭불은 바라나의 바라문가정에서 태어나 니구률나무 아래에서 정각(正覺)을 이루고 1회 설법에서 제자 2만 명을 제도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가섭불이 좌선을 하였다고 하는 연좌석(宴坐石)은 황룡사에 있었으며, 높이는 5, 6척 가량이고 둘레는 3발로 위는 편편하였는데, 황룡사의 두 차례 화재로 인해서 돌에 갈라진 곳이 생겼으므로 철로 붙여서 보호하였다고 한다.
또 과거칠불은 선종에서 석가모니에게 심인(心印)을 전한 맥을 표시하는 데 나열되기도 한다. 즉, 석가모니의 법맥은 칠불이 차례로 계승하여 내려오던 것을 받은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나라의 선종 사찰에서는 이 과거칠불도를 많이 묘사하고 그 옆에 각각의 오도송(悟道頌)을 기록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과거칠불 [過去七佛]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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